‘본인부담상한제’란 무엇인가?
본인부담상한제는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2004년 7월 1일 전격 도입되었습니다. 이 제도의 핵심은 환자가 부담한 급여 부분의 연간 의료비 총액이 환자의 소득 분위별 부담 상한액을 초과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공단’으로 병행 표기)에서 그 초과액을 환급해 주는 제도입니다.
단, 제도 시행 초기에는 상한액을 개인별로 세분화하지 않고 일괄 적용했는데 2004년 7월부터 2007년 6월까지는 6개월 동안 300만 원, 2007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는 6개월 동안 200만 원이 상한액으로 책정됐습니다. 현재처럼 상한액을 소득 분위별 10분위로 세분화한 것은 2009년부터의 일입니다.
본인부담상한제의 수혜자 규모와 본인 부담 상한액은 매년 증가했는데 가장 최근인 2024년은 최저 87만 원, 최고 808만 원으로 결정됐습니다. 단, 비급여, 선별급여, ‘전액본인부담금’, 임플란트, 상급병실(2~3인실) 입원료, ‘추나요법 본인일부부담금’ 등은 본인 부담 연간 의료비에서 제외됩니다. 쉽게 말해 이 항목들은 아무리 많은 비용을 지불해도 환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2023년과 2024년의 본인 부담 상한액은 아래의 도표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 2024년 1분위 소득자의 경우 급여 87만 원, 요양병원 120일 초과 입원 시 138만 원이 1년에 본인이 부담하는 상한액입니다. 따라서 그 이상을 지불하면 병원비와 입원비 초과액을 나중에(일반적으로 이듬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급을 받게 됩니다.
6분위 이상 고소득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기 때문에 입원비와 병원비가 합산되며 입원비 포함 병원비 상한액이 상위 분위로 올라갈수록 더 높아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자들에 비해 더 많은 병원비와 입원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급여, 비급여 등의 용어는 국민건강보험, 실손보험 등 보험 분야를 다룰 때는 지나치게 사전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단어 앞에 보험이 있다고 가정하고 새로운 단어로 취급하는 것이 빠른 이해를 위한 지름길입니다. 실제 ‘보험 급여’, ‘보험 비급여’ 등의 용어는 국민건강보호법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급여는 보험 급여와 같은 단어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가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현금 또는 현물을 가리킵니다. 사전식으로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항목과 약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무료로 제공되는 약제를 ‘급여 의약품’이라고 합니다.
급여 의약품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요양급여)에 따라 복지부 장관이 결정해 고시한 ‘약제급여목록 및 급여 상한금액표’에 등재된 약품을 가리킵니다. 아울러 ‘요양 급여’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이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4일’ 이상 요양한 경우 지급되는 급여입니다. 요양 급여의 범위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0조 제4항에 따라 진찰 및 검사, 약제, 처치, 수술, 재활치료, 입원, 간호 및 간병, 이송 등이 포함됩니다.
반면, 비급여는 건강보험의 혜택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병원 측의 의료 행위에 대한 비용과 약제 등을 지칭합니다. 비급여 부분은 각 병원이 자율적으로 비용을 책정하기 때문에 같은 항목이라도 병원마다 금액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선별급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일정 비율을 부담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별급여 본인 부담 80%라면 환자가 80%를 부담하고 공단이 나머지 20%를 지급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액본인부담금’은 말 그대로 약제를 포함해 발생한 비용의 100%를 환자가 전부 부담하는 것입니다.
이밖에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제도’는 본인 부담 금액이 큰 암 등 중증질환자, 희귀질환자, 중증난치질환자를 대상으로 본인 부담률을 경감해주는 제도입니다. 암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록하면 등록일로부터 5년 동안 요양 급여 총액의 5%만 본인이 부담하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소득이 적을수록 본인 부담 상한액이 낮게 책정되기 때문에 본인 부담 상한제는 의료비 지출이 큰 저소득층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매우 소중한 사회보장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본인부담상한제와 실손보험, 특히 1세대 실손보험의 보상 영역이 중첩되면서 본인 부담 상한제와 실손보험의 정체성이 서로 충돌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대혼란의 서막, ‘초과이득’ 발생
2003년 10월 1일 드디어 “실제 발생한 의료비를 보상한다.”는 기치를 내건 1세대 실손보험의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1세대 실손보험은 급여와 비급여의 구분이 아예 없고 자기부담률은 생명보험사 20%, 손해보험사 0%였습니다. 이로부터 9개월 후인 2004년 7월 1일 본인부담상한제가 시행됐습니다.
본인부담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실손보험 가입자가 실손보험금을 수령한 이후 이듬해인 2005년부터 건보공단에서 다시 상한제 초과액을 환급받으면 실제 지출한 병원비 이상을 받게 되는 낯선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의 경우 1년 동안의 상한액이 소득에 관계 없이 누구나 최대 6백만 원이었는데 병원비와 입원비를 합해 6백만 원 이상을 수령하는 ‘초과이득’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보험사와 금융당국의 입장에서는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실제 발생한 의료비를 보상한다.”는 실손보험의 성격과도 맞지 않고 “보험을 통해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손해보험의 ‘이득금지’ 원칙에도 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실손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사이에서 실손보험 환급금을 둘러싼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일진일퇴의 지루한 ‘20년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수많은 민원, 분쟁, 법적인 다툼이 여기저기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실손보험 보상금과 개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하는 환급금 모두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고 보험사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본인부담상한액 초과 금액은 보상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이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초기에 주도권과 명분을 가진 쪽은 단연 실손보험 가입자였습니다. 보험사들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1세대 실손보험 약관 어디에도 본인부담상한제에 대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법은 그 시행 이후의 사실에 대해서만 효력을 발하고, 과거의 사실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법률 불소급 원칙(法律 不遡及 原則)’을 적용해도 분명 가입자들에게 승기가 있었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약관에 본인부담상한제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은 내심 부담이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2009년 9월 말을 기해 1세대 실손보험의 판매를 중단하고 2009년 10월 1일부터 판매를 시작한 2세대 실손보험 약관에 “본인부담상한제를 초과하는 환급금을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아울러 생명보험, 손해보험 모두 자기부담률을 10%로 책정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보험사들이 1세대 실손보험의 약관에 내재된 허점을 시인하고 뒤늦게 이를 보완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론과 언론은 이 조치로 신규 2세대 가입자들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본인부담상한액 초과금액까지 환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친기업적인 법원의 판단은 이와는 달랐습니다.
20년 동안 12승 11패, 호각세의 1심 및 2심 판결
2009년 10월 1일부터 2세대 표준화 실손보험이 판매되면서 본인부담상한제에 관련된 소송은 2024년 초까지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보험사가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와 2세대 이후 실손보험 가입자를 명확하게 구분한 것인데 보험사의 이러한 전략은 훗날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마침내 소송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일방적인 승소, 즉 보험사들의 완벽한 패소로 끝날 것 같던 1심 소송들의 선고 결과는 본인부담상한제에 관련된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선고 결과가 대략 반반 정도로 1심 법원들의 판결이 서로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법적으로 문제를 종결해야 할 법원이 오히려 문제를 더 확대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심 소송 결과도 1심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소로 끝나지 않고 승패 비율이 엇비슷하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의 손을 들어준 1심 법원들과 2심 법원들은 그 이유에 대해 대부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 이유
- 첫째, 보험사의 약관에 대한 해석이 모호할 때는 보험사가 아닌 고객에게 유리한 쪽으로 약관을 적용해야 한다는 ‘작성자 불이익 원칙’을 따라야 한다.
- 둘째,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주장대로 보험사의 약관에 있는 ‘보상하지 않는 손해’ 조항에 본인 부담 환급금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보험사가 이를 공제하는 것은 환급금을 편취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부당하다.
- 셋째, 실손보험은 순수한 손해보험이 아닌 제3보험이기 때문에 보험사가 주장하는 ‘이득금지 원칙’을 반드시 적용할 필요가 없다.
이와는 반대로 보험사의 주장을 받아들인 1심 및 2심 법원들은 그 판결 이유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보험사 측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 이유
- 첫째, 본인 부담 환급금은 보험 가입자가 실제로 지급한 의료비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환급금으로 이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 환급금은 ‘이중수령’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 둘째, 환급금을 지급하는 것은 실제 입은 손해를 초과하는 금액을 보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험의 이득금지 원칙을 위반한다.
- 셋째, 특별약관(특약)의 보험 목적과 성질 등을 고려할 때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급받은 부분은 특약의 보상 대상이 아니다.
실손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사이의 이 같은 일진일퇴의 공방은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을 남겨둔 2023년 12월 31일 현재 약 20년 동안 통산 23전을 치러 12승 11패라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치열한 결과를 남겼습니다. 간발의 차로 1승이 많은 12승을 거둔 쪽은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였습니다.
이와는 달리 약관에 본인부담상한제를 명시한 2세대~4세대 실손보험의 소송 결과는 다소 싱겁게 결론이 났습니다. 9건의 소송 결과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보험사들이 일방적으로 승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에 따라 이미 환급금을 받은 2세대~4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험사들의 반환 요구 및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대법원의 역사적인 최종 판결은?
2024년 1월 25일, 마침내 국민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의 초과액 지급 여부를 둘러싼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와 보험사들 사이의 오랜 소송에 마침표를 찍는 역사적인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습니다.(대법원 2024.1.25. 선고 2023다283913 등)
최종 판결은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을 포함한 국민 대부분의 예상과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대한민국 법원은 친기업적이다.”라는 항간의 불문율을 증명하듯 대법원 1부는 결국 보험사의 승리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20년 법정 대하드라마는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입장에서는 결국 비극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반대로 보험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피 엔딩’이었습니다.
보험사 측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판결 요지
국민건강보험법상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하는 금액, 즉 환급금은 실손보험의 피보험자가 아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비용이다. 따라서 이 금액을 보험사가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지급할 필요가 없다.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해 건보공단으로부터 환급받은 부분은 실손보험의 보상 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 실손보험은 보험 사고의 손해를 보상하는 손해보험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법률 전문가들을 포함한 여론이 이 판결에 쉽게 수긍하지 않으면서 1년 4개월 이상이 지난 2025년 5월 현재까지도 두고두고 이에 대한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연 이 사건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특히, 판결문 중에서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본인부담금 상한제에 관한 법령내용을 보험계약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거나,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이후에 본인 부담금 상한제로 사후 환급이 가능한 금액은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표준약관이 제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특약에 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부분은 구절구절 몇 번을 곱씹어 읽어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1세대 약관에 본인부담상한제에 대한 조항이 없는 것을 변명하려는 의도가 너무 뻔해 법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법원이 편향적이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대법원 선고 2023다283913 판결문 PDF 파일 다운받기
이 판결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이미 환급금을 받은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 중 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보험사들의 반환 요구 및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아울러 1심 및 2심에 계류 중인 소송들의 결과 역시 보험사들의 승소가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하지만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 대부분은 아직 이 소송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12승 12패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