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K 씨는 본인의 배우자를 피보험자로 하는 실손보험 계약을 모 손해보험과 체결했습니다. 이후 암에 걸린 K 씨의 배우자는 2022년, ‘위험분담제’가 적용되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주사제(키트루다주)’를 병원에서 처방받았습니다. 키트루다는 암 환자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세계 매출 1위를 자랑하는 고가의 치료제입니다. 이에 K 씨는 키트루다주가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일단 비용 전액을 병원에 지불하고 ‘위험분담제’에 따라 키트루다주의 국내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제약사인 한국MSD로부터 약 1,500만 원을 환급받았습니다. 이어 K 씨는 실손보험을 가입한 보험사에 약값 전액인 3,60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키트루다 주사제(Keytruda Injection)
고가의 비급여 약품으로 식도암, 자궁내막암, 직결장암을 비롯한 각종 암환자의 치료 등에 쓰임. 모르핀으로 유명한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Merck)가 개발한 면역 항암제로 2015년 출시 이후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항암제로 자리매김. 가장 최근의 통계인 2023년의 경우 글로벌 매출 2위인 관절염 치료제 휴미라주(Humira Injection)를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고 매출 250억 달러를 기록하며 글로벌 1위 의약품으로 등극. 다행히 2028년에 특허가 만료되기 때문에 2029년 이후 다수의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복제약)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
위험분담제(RSA, Risk Sharing Agreement)
위험분담제는 암과 희귀 질환 등 중증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고가의 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14년 1월부터 시행된 제도. 신약의 효능·효과 등이 검증되지 않았고, 이 신약이 건강보험의 재정에 미칠 영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해당 제약회사가 원할 경우 그 불확실성(Risk)의 일부를 분담하는 제도. 쉽게 설명해 제약사가 약값의 일부를 환급금 형태로 나중에 환자에게 돌려주는 제도. 조건을 갖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선별 급여’ 형식으로 고가의 약값을 지원하기도 함. 위험분담제 적용대상은 대체제가 없는 고가의 항암 신약, 희귀 의약품 중에서 비급여로 판정받은 의약품이거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한 약제. 이 제도를 통해 난치병이나 희귀병을 앓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제고되고 고가의 신약을 취급하는 제약사의 유통 구조가 개선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음.
소송의 발단
이에 대해 보험사는 K 씨에게 약값 전액을 지급하지 않고 제약회사의 환급금 1,500만 원을 제외한 2,100만 원을 실손보험 보상금으로 지급했습니다. 제약회사로부터 받은 위험분담제 환급금은 본인이 실제로 부담한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금액은 제외한 것입니다. 보험사는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또는 의료급여법에서 정한 의료급여 중 본인부담금(본인이 실제로 부담한 금액을 말합니다)의 90%에 해당하는 금액과 비급여(본인이 실제로 부담한 금액을 말합니다)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합한 금액”이 보험금 지급 대상으로 약관에 명시되어 있다고 일부 부지급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실손보험 계약자 K 씨는 보험사의 이러한 결정이 부당하고, 계약 전 상담 시 보험사가 위험분담제 환급금은 해당 실손보험에서 보상하는 손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의 판결
2023년 5월, 1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은 “위험분담제에 따른 환급금은 의료비 분담금이라고 볼 수 없다.”며 원고인 실손보험 계약자 K 씨의 승소를 판결했습니다. 환급금을 포함한 모든 금액이 피고인 보험사가 보상할 보험금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재판부는 “위험분담 환급금은 제약사의 판매량 확대 이익과 환자의 치료 욕구(환자가 환급받는 약제비)를 서로 지불·보상하는 일종의 보상계약”이기 때문에 “위험분담제에 의한 환급금은 법률행위 내지 계약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서 의료기관의 요양급여 제공이라는 사실행위에 의해 발생하는 의료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판결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한 “설령 환급금이 보상해야 할 금액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그런 사실을 ㅇ 씨나 그의 배우자에게 설명했다는 아무런 주장‧증명이 없다”면서 원고의 손을 확실하게 들어주었습니다.
2심 재판부의 판결
위와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한 보험사는 고등 법원에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2024년 2월, 서울중앙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을 뒤엎고 보험사의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위험분담제에 따라 환급받은 돈은 보험계약 약관에서 보상 대상으로 정한 본인부담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위험분담제 환급금은 보험 계약자가 부담한 비용이 아니고 제약회사가 부담한 비용이기 때문에 보험사가 이 금액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어 “위험분담제에 따라 환급받은 금액까지 손해로 파악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위험분담제 적용대상인 약제에 대한 지출이 잦을수록 피보험자에게 추가의 경제적 이득을 주는 것이 돼 손해보험의 기본원리인 실손보상 및 이득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보험사가 별도로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가입자로서는 약관 내용을 통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으므로 보험사의 명시·설명의무 위반도 없다”고 보험사의 나머지 손까지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
2024년 7월 11일 대법원은 이 소송, 즉 ‘보험금 [피보험자가 위험분담제에 따라 제약회사로부터 지급받은 환급금이 보험계약에서 지급대상으로 정한 본인부담금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2024다223949 판결) 그 결론은 “위험부담 환급금은 실손보험의 보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정당하고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법원은 “피보험자가 위험분담제에 따라 제약회사로부터 환급받는 금액은 피보험자가 실제로 부담한 요양급여비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제약회사가 최종적으로 부담한 환급금은 본인부담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 환급금은 애초에 실손보험의 청구 대상이 아니고,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내용이 약관에 분명히 기재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험 계약 전에 위험분담제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실제로 부담한 비용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금액은 이 사건 약관조항에 따른 보험금 지급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의미로 일의적으로 해석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일의적’으로 해석하지 못한 1심 재판부가 이 판결문의 ‘판단 4번’을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은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약관해석과 작성자 불이익 원칙, 이득금지의 원칙 및 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은 주문으로 보험 계약자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환급금 1,500만 원에 더해 재판 비용까지 부담하게 된 원고에게 심심한 위로의 메시지를 보냅니다.